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하면 축구는 1863년에 영국 런던에서 풋볼 어소시에이션(FA)이 설립되어 각종 룰의 통일되며 본격적으로 탄생, 발전의 첫 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먼 옛날부터 이미 「손을 사용하지 않고」「발로」「공을 차는」경기, 즉 오늘날의 풋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존재했었다.
동아시아의「축국(蹴鞠)」이야말로 그 가장 오래된 예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축국의 기원은 일설에 의하면 기원전 300년 이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스포츠」가 아니라 전사훈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축국은 이후, 한반도와 일본에 전래되었다.
그럼 동아시아 축구연맹의 현재 가맹되어 있는 10개국/지역에서 최초의 풋볼 어소시에이션(=축구협회)이 설립된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최근에 FIFA월드컵 연속출장을 이뤄내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 이 아닌 홍콩이다. 홍콩 축구협회는 1914년에 설립되었다. 홍콩에는 과거 아시아 축구연맹의 사무국이 있었으며 1968년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프로 리그가 발족하여 세계적인 스타가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등, 동아시아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 계를 리드해 나가던 시절이었다. 각국의 협회 설립 순은 이하와 같다.
세계대회의 하나인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팀은 중국과 일본이었다. 중국은 1936년에 치러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첫 경기에서 영국에게 패했다. 일본도 베를린 올림픽으로 첫 세계대회 출전을 달성했으며 강호 스웨덴을 3-2로 꺾는 등,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스포츠의 국제무대에 먼저 복귀한 팀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1951년에 치러진 제 1회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중국은 출전하지 않았으며,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한 출전하지 않았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보다 12년이나 늦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한국은 준준결승전에서 이 대회 우승팀인 스웨덴에게 패했지만, 조별 리그에서 멕시코에게 승리했다. 중국도 지난 올림픽에 이어서 연속 출전했으나 터키에게 패했다.
한동안 중국, 일본, 한국이 리드해 나가던 동아시아 축구계는 1950년대에 들어서 대만이 황금기라 불리는 시대를 맞이했다. 세계대회 출전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1954년의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한국을 5-2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결승전에서 한국을 꺾고 아시안 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그 후 남자축구는 침체기가 계속되었으나 여자는 1991년 FIFA 여자세계선수권 출전, 1999년의 아시아 여자선수권 결승진출 등, 세계적 수준으로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후 두각을 나타낸 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전하여 조별 리그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격파한 후, 준준결승에서 전설적인 축구영웅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포르투갈에게 3-5로 패하기는 했으나 축구의 성지 잉글랜드에서 기적 같은 8강을 달성했다. 붉은색 유니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은 “붉은 번개”라 불렸다.
2년 후의 국제대회에서 각광을 받은 팀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멕시코 올림픽에서 카네모토 쿠니시게(KAMAMOTO Kunishige)를 이끌고 출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출전했으나 이후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지킨 것은 한국 팀이다. 1986년의 멕시코 월드컵에서 32년 만에 본선 진출, 월드컵 대회에서는 그 후 1990년 이탈리아 대회, 1994년 미국 대회, 1998년 프랑스 대회까지 4대회 연속 출전을 달성했으며 2002년 대회의 개최국으로 이어진다.
대표팀이 성장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프로 리그. 아시아 최초의 프로 리그를 발족한 홍콩보다 뒤늦은 1983년에 한국, 1993년에 일본, 1994년에 중국에서 각 각 프로 리그가 탄생했다. 이는 동아시아 축구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프로 리그의 활성화로 급격하게 대표팀의 레벨이 향상된 팀은 일본으로 1993년 미국월드컵에서는 최종 예선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을 놓쳐 “도하(당시 경기 개최지)의 비극”을 연출했으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숙원의 월드컵 첫 본선 출전을 달성하였으며, 2002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최에 의한 월드컵 한일 대회가 개최되었다. 동 대회에서는 호스트 국인 한국과 일본 외에 중국도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 동 대회에서는 한국은 4강, 일본도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올리며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동아시아의 지위를 한번에 격상시켰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66년 대회 이후 44년 만에 본선 대회 진출을 달성한 외에, 한국의 7대회 연속 본선 출전, 일본의 4대회 연속 본선 출전을 기록했으며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16강에 올라섰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 5월에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이 발족되었다. 동아시아권 지역의 축구 발전과 지역 내의 교류를 심화하여 결속을 다져 지역 평화에 공헌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당초는 중국, 대만, 괌, 홍콩, 일본, 한국, 마카오, 몽골의 8개국 및 지역이 가맹했으며 같은 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008년도에 북 마리아나 제도가 추가되어 현재는 10개국 및 지역이 가맹되어 있다. 한 여름에는 40도, 한 겨울에는 -40도를 넘나드는 악조건 속에서도 축구 발전에 전념하는 몽골과 일년 내내 여름이 계속되는 괌 등, 동아시아 축구연맹에 가맹되어 있는 나라 및 지역의 환경과 축구문화는 실로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동아시아 축구연맹은 2003년에 주최대회인 동아시아 축구선수권의 첫 번째 대회를 일본에서 개최했다. 이 후 2005년에는 한국에서 제 2회 대회를, 2008년에 중국에서 제 3회 대회를, 2010년에 일본에서 제 4회 대회를 각 각 개최했다. 2013년에는 한국에서 제 5회 대회 개최가 결정되었다. 또한 2005년 한국대회부터 동아시아 여자축구 선수권도 병행해서 개최되고 있다. 2008년부터는 여자도 예선대회를 치르게 되어 남녀 모두 한층 동아시아 지역내의 축구발전과 교류활성화에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가장 현저한 성장을 보인 곳은 괌이다. 협회설립 후에는 오랫동안 험난한 시기가 이어졌지만 2009년 3월, 동아시아 축구선수권 2010 예선대회에서 몽골을 꺾고 FIFA 가맹국으로부터 역사적인 첫 승리를 올렸다. 그리고 괌은 이 대회에서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하며, 준결승 대회에 진출했다. 괌과 더불어 “마리아나 더비”를 치르는 북 마리아나 제도에게 있어서도 괌 축구계의 수준 향상이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풋볼」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동아시아에서는 착실히 「축구」라고 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큰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하는 순간이다. 「오랜 역사를 지녔으나 새로운」동아시아 축구는 앞으로 어떤 발전을 이루어갈까? 금후의 활약에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