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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탁마해 온 숙명의 라이벌 - 한국과 일본이 런던올림픽에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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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passion

July 29, 2012

No.13

7월 하순에 개막하는 제30회 올림픽(2012/런던)에 동아시아 축구연맹에서 한국과 일본이 출장한다. 둘 다 통산 9회째 출장이며 한국은 7대회 연속, 일본은 5대회 연속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아시아 축구계의 전설이 이끄는 U-23 한국대표

아시아 축구계의 전설인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U-23 한국대표는 국내외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정예의 집단이다. K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가 6명, 그 다음에 많은 것이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이다. 5사람이나 된다. 그 가운데에는 J2 쇼난 벨마레에 재적하고 있는 한국영 선수도 있다. 볼을 뺏는 능력이 우수한 볼란테인 한국영 선수는 이번 시즌 J2에서도 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멤버 발표 시에 오미야 아루디자 소속이었던 김영권 선수는 7월 2일에 광저우 헝다로 이적한다고 발표했다. 왼발의 롱 피드가 뛰어난 센터 백은 대표팀에서도 이미 레귤러 포지션을 쥐고 있다.

유럽 클럽에서도 5명의 선수가 소집되었다. 오버 에이지 범위인 박주영 선수는 한국대표 중에서도 실적이 풍부한 스트라이커이다. 기성용 선수(셀틱)도 대표 레귤러 클래스인데 23세 이하 플레이어로 선출되었다.

AFC 아시아컵 2011에서 득점왕에 빛나는 구자철 선수(아우크스브르크)도 89년생 23세이다. 홍명보 감독은 그를 주장으로 지명했다. 남은 한 사람은 카타르• 스타즈 리그 레크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남태희 선수이다. 특히 그는 한국축구협회 육성 프로그램에 의해 10대에 잉글랜드로 건너간 선수이다. 그 후는 리그•앤(프랑스)의 발랑시엔과 계약하여 09년 5월부터 작년 12월까지 활약했다. 유럽조 중 1인이 되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팀은 7월 2일에 소집되어 그 날부터 국내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14일에는 오세아니아 지구 대표로 출장하는 뉴질랜드와 서울에서 평가전을 가질 예정이다.


U-23 일본대표는 경험이 풍부한 2명의 오버 에이지를 추가

U-23 한국대표가 처음 활동을 개시한 그 날, 일본에서는 세키즈카 다카시 감독이 U-23 일본대표의 리스트를 발표했다. 팀의 베이스는 아시아 최종예선에 참가한 멤버이지만 지휘관은 2명의 오버 에이지를 최종라인에 투입했다. 도쿠나가 유헤이 선수와 요시다 마야 선수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장한 도쿠나가 선수는 수비에 있어 스페셜 리스트이다. 센터 백, 좌우 사이드 백, 볼렌테를 담당할 수 있다. 올림픽 등록 인원수는 FIFA월드컵보다 5명이 적은 18명이다. 그런 만큼 도쿠나가 선수와 같은 타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시다는 전회 베이징올림픽에 출장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이끄는 일본대표 중에서도 부동의 센터 백으로서 최종라인을 지탱하고 있다. 「연령도 23세 이하 선수와 가까워 수비에 있어 리더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세키즈카 감독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VVV펜로(네덜란드)로부터 이적을 모색하고 있는 그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AFC U-19에서의 패배를 가슴에 새기고 런던으로 향하는 일본

서포터나 대중매체는 아무래도 해외파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내파에도 강한 결의를 품고 있는 선수가 있다. GK 곤다 슈이치 선수와 FW 나가이 겐스케 선수이다.

2008년 11월 8일, 곤다 선수와 나가이 선수는 U-19 일본대표의 일원으로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다. 다음 해 이집트에서 개최되는 FIFA U-20 월드컵의 출장권을 걸고 『AFC U-19선수권 사우디아라비아2008』에서 경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로 가는 티켓은 상위 4개국에 주어진다.

준준결승 상대는 한국이었다. 21분에 선제 점을 빼앗긴 일본은 1점 차로 종반까지 끌고 갔다. 그러나 84분과 90+2분에 실점을 하여 결국 0대 3으로 지고 말았다. 1995년 대회부터 계속되어 온 일본의 U-20 월드컵 출장은 7회 연속으로 끊어져 버렸다.


이 때 맛본 패배의 분함을 곤다 선수와 나가이 선수는 결코 잊지 않았다. 이것이 런던을 향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절차탁마하여 같이 성장을 계속해 온 양국

어느 시대에도 어느 카테고리에서도 일본과 한국은 사투를 벌여 왔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분함도 모두 성장의 양식이 되었다.

서로 절차탁마함으로써 양국은 레벨 업을 도모하고 있다.

올림픽 남자축구에서 아시아가 메달을 획득한 것은 1968년 대회에서 일본이 획득한 동메달이 유일하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 일본과 한국은 런던올림픽의 그라운드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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